아침, 저수지 가는 길
핑크색 운동복을 입은 주민이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였고
어느 타이밍에 고개를 숙여야 하나
타이밍에 대해 생각하는데
주민 분, 갑자기 달려오셔서 덥석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프로필을 읽어 나갔다.
나이
하는 일
재산 상태
외모
그리고 결혼하면 시아버지가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얘기
……
오버랩되는 사건이 스쳐 지나간다.
어제 이런 일이 있었다.
고시원에 미스터리한 인물이 있다.
그녀는 두어 달 전 공무원 시험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고시원을 나갔는데
가끔 고시원에 출몰(?)한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그런 그녀를 만났다.
캐리어 끌고 나간 후 이렇게 만난 게 처음도 아니고, 두 번 째도 아니고, 세 번째 만남일까.
암튼
그녀는 2시 차를 타고 떠난다고 했다.
그래서 버스정거장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는데
까이고
인생은 까임의 연속이지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렇게
독서실에 내려가 공부를 하는데
한 3시경 그녀가 내 자리를 찾아왔다.
내 자리를 몰라서 다 돌아다녔다며 샤인 머스켓을 한 송이 건네줬다.
그렇게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데
뜬금없이 소개팅을 하라고 하더라
남자가 연상도 좋다고 했단다
송중기 같은 바람직한 남자구나, 했다.
그러나
나보다 그녀 쪽이 훨 잘 어울린다고 잘해 보라고 넘겼는데
본인은 연하가 좋단다.
그래서 그냥 웃어넘겼는데
그녀가 준 샤인머스켓이
그녀가 소개팅하라는 남성이
다 핑크 운동복 아주머니와 접점이 있었다.
퍼즐이 맞춰졌다
나 매일 세수도 안 하고 저수지 나가는데
고시원 온 이래로 머리 빗은 적도 드라이한 적도 없는데
생각해 보면 이런 자연 상태로 지낸 적이 정말 없는 거 같은데
……
나이도 안 묻고
준비하는 시험도 안 묻고
학력도 안 묻고
재산도 안 묻고
대체 뭘 믿고 전화 통화라도 해 보라는 걸까.
아주머니는 그녀가 고시원에서 공부 중인 걸로 아시던데
(정정은 따로 하지 않았지만)
정말 그녀의 정체도 너무 궁금하다.
암튼
좋은 소식을 기다렸더니
기다리던 추가 합격 소식은 오지 않고
……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도 좋은 일을 바라니까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기나, 싶은 게
오늘도 뭔가를 바라면서 잠을 자야겠다.
암튼
그런 이유로 당분간 저수지는 발길을 피해야겠다.
저번에 이 동네 결혼 아직 못한 그래서 소개팅 중이라던 막내 딸 있던데 둘이 맺어 줬으면 좋겠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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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퍼즐이 맞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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